반야의 노래
성삼재~여원재 (10월31일)1편 본문
[백두대간 ] 성삼재~작은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고기리~노치샘~수정봉~여원재
○산행일시 : 2012. 10.31. 07:00~15:25 (소요시간: 8시간25분, 중식시간 40분 포함)
○산행구간 : 성삼재(07:00)-(1.6km)-작은고리봉(07:30)-(1.7km)-묘봉치(08:30)-(1.9km)
-만복대(09:00)-(2.2km)-정령치휴게소(09:50~10:20)-(0.9km)-큰고리봉(10:50)
-(3.2km)-고기삼거리(12:00)-(2.4km)-노치샘(12:35)-(1.8km)-수정봉(13:35~13:45)-
(1.3km)-입망치(14:15)-갓바래봉(3.3km)-여원재(15:25)
○산행거리 : 대간거리20.3 km/접속거리 0km/실거리 20.3km
○날씨 : 맑음
○구간특징
-산행 들머리 : 성삼재주차장
-성삼재주차장입구에서 뱀사골 방향으로 50 여m 내려가다 좌측 능선으로 진입하는 출입구가 있음.
-작은고리봉의 정상석은 고리봉으로 표기되어 있으며, 정상아래 삼거리에서 진행방향 좌측길이
정상방향임.
-묘봉치는 작은 헬기장이며 이정표가 없음.
-만복대 정상까지는 나무가 없는 지역이고 정상이 한 눈에 들어옴.
-만복대 정상에서 좌측능선으로 내려가다 능선분기점에서 정령치로 진행.
-정령치는 도로상에 있으며, 휴게소에서 식수 구입 가능.
-정령치휴게소 좌측 뒷쪽으로 대간 주능선이 이어지며 고리봉(큰고리봉)으로 진행.
-큰고리봉 정상에서 진행방향 좌측 고기리 방향으로 내려설 것(삼거리 이정표)
-큰고리봉 정상 삼거리에서 직진하면 바래봉으로 이어지는 태극능선임.
-고기리로 내려서는 길은 가파른 내리막이므로 주의가 필요함.
-큰고리봉에서 고기리 방향으로 약 500 여m 정도 내려서면 울창한 솔숲이 고기삼거리까지 이어짐.
-고기삼거리에서 운봉방향 지방도 60번 도로를 따라 약20여분 진행하다가 좌측 노치마을로 진행
-노치마을 진입후 노치샘을 거쳐 마을 뒷편 당산소나무 군락지로 진행
-수정봉은 이정표가 있으며, 수정봉에서 내려서다 임도 갈림길 주의(시그널 확인)
-입망치로 떨어진 후 700봉 방향으로 진행
-700봉에서 여원재로 내려오는 길에 임도를 만나며, 임도를 따라 내려오다 왼쪽 산길로 진입
-여원재는 24번 국도상의 정상이며 표지판 있음
-식수 보충장소: 정령치휴게소,여원재민가
○ 산행인원:2명
○교통편: 갈때 수원(18:10)~함양(21:00) 15,300원 함양 찜질방 9.000 함양~성삼재(친구가 이동 해줌)
올때 여원재~남원역 1,850원 남원역(17:04)~수원역(20:30) 17.800원
(함양친구가 저녁.아침 사주고 산행들머리까지 이동시켜줌)
경비: 43,950원
***대간 졸업을 코앞에 두고 지리산 자락으로 땜방하러 ***
함양에서 숙박을하고 친구 차로 성삼재를 향하는데 뱀사골 입구.달궁계곡입구에
눈이 부실 정도로 고운단풍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잠시 내려 구경하고 가고 싶지만 친구가 출근하려면 시간이 촉박한 관계로 난 차안에서
단풍구경 삼매경에 빠져 입이 다물어지질 않고 연실 탄성만 .......
우와!오우! 정말 멋지다.멋쪄!!!
친구왈:" 옥아 다음엔 디지게 종주만 하지말고 여유롭게 살방살방 하며 비박하제이" 한다.
오케이 싸인과 함께 작별 인사하고 7년만에 다시 찾은 이 대간길 ...(성삼재~여원재)
그땐 무박으로 와서 컴컴할때 이 길을 지났기에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오늘은 모두 조망하고 산행한다는게 너무 좋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지리산 자락이라 서인지 편안하다.
작은고리봉 오르는 길에 일출도 감상하고 ,만가지 복을 가져다 준다는 만복대에서 멋진 상고대도 보고
정령치 휴게소에서 또 다른 인연을 만난다.
세석대피소에서 4년 근무하다가 정령치로 옮기셨다는 지리산 국립공단 직원분인데
엄청 친절하시다. 다음에 오면 서부능선 안내도 해주신단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큰고리봉에 오른다.
이 곳에서 백두대간길 고기 삼거리와 지리산 태극능선인 바래봉 방향이 갈라진다
급경사 내리막을 500 여 미터 내려서자 다소 완만해진 숲 속은 온통 소나무들로 가득 차 있다.
솔숲 부드러운 흙길은 솔내음 맡으면서 삼림욕을 즐기며 걷기에는 너무나 분위기 있는 길인 듯 하다.
약 2.5km 정도 이어지는 솔숲 길을 내려서면 고기삼거리다.
고기 삼거리에서 노치마을까지 2차선 도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안쪽 노치샘에서 부터 대간길은 수정봉을 향해 키를 높이면서 노치마을의 당산소나무를 지난다.
마을 뒷쪽의 아름드리 육송인데도 마치 바위틈에 뿌리내린 듯 운치있게 휘어져 있다. 잘 나있는 길을
따라 오르자 수정봉 정상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임)
옛날 수정광산이 있어 부르게 되었다는 수정봉은 마치 학이 날개를 펴고 날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는 곳으로, 전설에 의하면 수정봉의 노치마을에 옛날 민씨라는 거지가 살았는데 그는
짚신을 삼아 팔면서 살았다고 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민씨가 죽어 눈 덮인 산을 헤매어 시체를 매장
하려는데 신기하게도 시체의 관이 알맞게 들어갈 만큼 눈이 녹아 있는 곳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곳에 장사를 지냈는데 바로 그 자리가 용은 용인데 주인이 없다는 황룡무주의
명당이었다.
이 묘를 쓴 뒤 그 후손이 번창하였다고 하는데 그 묘에 호화롭게 석물을 세우고 보수를 한 뒤로는 자손
들이 뜻밖에도 나쁜 일을 당해서 다시 석물들을 없앴더니 화가 없어졌다고 한다. 돌이 무거워 학이
날지 못했다는 것이다.
수정봉을 뒤로 하고 올라온 만큼 내려서는 안부가 입망치다. 또다시 700봉을 올랐다 내려서니 백두
대간의 유서깊은 고개인 여원재다. 여원재는 470미터이다.
여원재에서 땜방구간을 마치며 바로 도착한 남원역행 버스에 몸을 실는다.
남원역에서 수원행 열차를 타고 10월의 마지막 밤을 만끽하며 집으로 향한다.
2012년 10월 31일 김 종 옥
슬픈 여원재의 전설(펌)
고려 우왕(愚王) 6년(1380)에 왜구를 정벌하기 위해 이성계 장군이 지휘하는 부대가 고개 정상에
이르렀을 무렵 갑자기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를 가리더니 비몽사몽간에 노파(老婆) 한 분이 이성계
장군 앞에 나타나 왜구와 싸울 시기와 장소 방법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 노파는 당시 경남 함양지방의 미모 단정한 주부였는데 왜장 아지발도가 그녀를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니 칼로 자기 젖가슴을 도려내고 자결한 원신(怨神)으로서 노파로 변신하여 이성계 장군에게
전략을 일러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여원재 여신상은 왼쪽 젖가슴이 없으며 그 노파가 지적하여
준 결전의 장(場)이 곧 운봉 황산(荒山)이었다고 한다. 황산에서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황산
대첩비가 지금도 인근 비전마을에 남아있으며, 이성계 장군은 정성을 다해 노파를 만났던 여원재
석벽에다 왼쪽 젖가슴이 잘린 여상(女像)을 새기고 그 위에 집을 지어 여상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산신각(山神閣)을 지었다고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왜적이 함양을 유린하고 남원성을 향하는 도중 여원재 주막에서 술을 청하여 진탕
마시다 얌전한 주모를 위협하여 주모의 손목과 젖가슴을 만지며 방자한 행동을 하였다. 이런 수모를
당하고 난 주모는 비분하여 부엌칼로 자신의 젖가슴을 도려내어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후 이런
주모에 대한 소문이 퍼져 이곳 주민들은 그 주모의 절개를 높이 기리기 위하여 그 자리에 비석을
세우고 그녀의 제각을 지었다고 한다.
당시 여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을 때 그 여인의 몸에서 물이 흘러 그 아래 마을 밭에서 자라는 풀이
쪽빛(藍)으로 변하였다고 하여 지금도 그곳 지명이 남평리(藍坪里)로 되어 있다고 한다
○고도표
○지형도 7구간 지형도.jpg
상고대가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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